未完
그래서 그 내후년의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내심 궁금했지만 그때에도 그와 남자는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고 있었다. 아마도. 아마도 그 결혼은 그와 남자의 성탄절 계획처럼 어그러졌을 것이다. 다 큰 남자 둘이 휴일에 모여 시간을 때우기에 무난한 것들만 모아 뒀던, 둘 중 누가 전화 한통만 해도 취소할 수 있을 만큼 영 평범하고 지루했던, 그렇지만 그는 조용히 기대했던 그 단순했던 계획처럼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꽁꽁 얼은 빙판 위에서 기우뚱 넘어지거나 공책에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 따위의 일과 남자의 결혼이 같은 무게를 가진 일이었으면, 그래서는 남자가 이 상황에서 그 자신의 결혼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남자가 생각도 않는 사이에 이 상황이 남자의 결혼을 되돌릴 수 없게 망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참 주제 넘다 못해 비뚤어진 제 마음을 마주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건 잘 알았다. 결혼이 어찌 그런 것들과 비슷할 수나 있을까. 둘이 급하게 자취를 감추며 도망친 지도 고작 몇 주가 지난 참이다. 그 몇 주 동안 둘은 필요한 것 외의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물 필요해요? 오늘은 여기서 묵죠. 모자 써요. 어쩔 때는 남자가, 또 어쩔 때는 그가 그렇게 말했고, 그러면 대답도 없이 그대로 행동하곤 하는 게 요 며칠에 일어난 일의 전부였고, 이러한 일방적인 말 뒤, 앞으로의 일이란 건 너무도 아득했으며 그걸 정하려고 드는 순간부터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지기까지 했기에 남자의 어그러졌을-또는 어그러지지 않았을, 제대로 말이 오가는 대화를 시작해야만 얼추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을 내후년의 결혼 생각을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었다. 같이 떠나야 했을까? 이는 정말로 이기적인 짓이 아니었을까.
그는 몰라도 남자는 저처럼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선과 악이란 둘로 나눌 수 없다 하여도 더 물들고 덜 물들고는 있겠거니, 영영 쫒기는 생이 어디 생일까, 단지 그 삶 아닌 삶에 남자를 끌어들이고도 그는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가 않았다. 제게 모질지 못하고 영 둔하고 순한 남자가 준 가죽 장갑에 손을 밀어 넣고 걷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었다. 추위가 마음까지 굳혀두기라도 한 것 마냥 오두막을 향해 걷는 동안에도 혀는 입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으니 죽음 같은 고요함 아래에선 그의 입김만이 하얗고 길게 보였다. 걷는 걸음마다 길에 두껍게 쌓인 눈이 발밑에서 짓눌리며 빠드득 뼈 부러지듯 고요한 숲 속에서 음산한 소리를 냈다. 주시는 차라리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이 눈길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그래서 아무 말 없이도 눈 밟는 소리만 그저 영원히 가득 차 다른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어떤 말을 할지 그는 여전히 몰랐으며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역시 불분명했다. 무엇이든 말하기 시작하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고요가, 그 고요 속의 저와 상대의 마음이, 끝에 가선 모든 게 잘게 부서져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까 봐, 그 붕괴된 잔해 사이에 홀로 남겨질 스스로를 생각하면 슬픔이 치밀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원했던 것이다.
흰 눈과 흰 입김과 딱 그만치로 하얀 자작나무 숲과 멀리 보이는 눈에 뒤덮인 하얀 지붕의 하얀 연기와 남자의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낯 속에선 모든 게 새하얗게 질려갔다. 가까워지는 집 안에서 그는 굳은 혀를 움직여야만 할 터인데 자신은 역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