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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 Over the Bay

Rybs 2020. 6. 12. 23:14

 

 

라코니아 외곽 숲의 번듯한 집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한 가십거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부기맨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숲과 가장 가까운 가장자리에서도 가장 가장자리인 곳에 위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여러 말을 떠들 줄 알았고, 도심과 멀어 불편한 점도 더해지고, 이렇고 저런 이유들, 숲에서 들리는 짐승 혹은 짐승 아닌 것들이라는 소문의 비명들, 그렇기에 오랫동안 사는 사람도 없이 버려졌던 그 집을 한 남자가 사들인 것이 약 2년 전이다. 여기서 사시려고요? 양도 서류에 푸른 펜으로 이름을 휘갈겨 쓰는 남자에게 전 주인은 확인이라도 받듯 되물었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전망이 좋다고 대답한 것이 다일 뿐이다. 우리 집 이름도 지을까요? 바짝 밀려 까끌거리는 뒷목을 매만지며 카이는 숲을 돌아보았다. 낮의 숲으로 들어서는 가느단 오솔길은 고요하고도 빛이 들어 마냥 안락해보였다. 그녀의 새 집처럼.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아마 그 안락함에 저도 모르게 들뜬 것을 숨기듯 그런 말을 덧붙였을 때 그녀의 후견인은 언제나처럼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붉게 적힌 '팔림' 사인을 가볍게 없앴던 것이다. 아냐, 필요하다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카이는 게르다가 언제나처럼 중얼거리는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되물음직도 하였으나 그러지 않았다. 어쩐지 그때 즈음엔 그런 알 수 없이 뜬 구름 잡는 요정의 말들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만 같았던 모양으로, 그렇게.


집 안에 바다도 있다고요. 우리 소풍 가요.

뭐? 식탁에 기대앉아 있던 카이의 말에 되묻는 목소리는 조지의 것이었다.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냐, 꼬맹아? 조지랑 똑같은 거 먹었잖아요. 바다가 있다니까요. 기대 앉아 있던 몸은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만큼 종잡을 수 없이 움직여서는 어느새 버들고리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요정의 집에선 시간만 잘 맞는담 어떤 일이든 일어나니까. 짐짓 밝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였다.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어렴풋이 안다는 듯. 게르다, 정말 우리 해변으로 소풍 가요. 오늘 같은 날이 언제 또 와요. 그래, 오늘은 가면 다시 오지는 않지, 이 세상의 날들은 언제나 새로운 날이니까. 카이의 뒤에서 바구니를 잡아 드는 주름진 손의 장본인은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끼었다. 안 그래도 집 구경을 시켜주려고 했었어. 바다 이야기는 뭐요? 마법이지, 요정의 마법. 우리 정말 소풍이라도 갈까 싶네. 봐요, 가자니까요. 한낮의 햇살이 거실 창을 통해 들어와 늙은 요정의 뒤에 드리웠기에 조지는 그저 목소리가 내심 즐거워 하는 것 정도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까짓것. 어영부영 조지 호건의 입에서 승낙의 말이 떨어질 적에 카이가 낸 것이 분명한 나직한 휘파람 소리 날카롭게 들렸다. 수영도 해요? 그건 소풍이 아니잖아. 뭐 어때. 안 한다고. 수영복 빌려줄 수 있는데. 필요없다. 그런 시답잖은 대화 중에도 안쪽 복도 가장 깊은 곳에서는 미처 닫지 못한 창이라도 있다는 듯 어느샌가 짭짤한 바람이 새어나왔다. 분명 평온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법이다. 자주 침묵이 둘 만이 있던 세상 속 덜 미장한 틈을 메우는 것을 즐거워 하는 척 했대도 저 어린 부적응자들에게는 여간히도 사람과의 대화가 고픈 법이었다고, 그러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게르다는 바구니를 채우며 거실을 내다보았다. 계약 아래 자리를 내 준 어린 것과 더 어린 것 둘 다를 지켜보는 눈이 어떤 생각을 품은 지 그들 중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제가 부리는 그 어떤 마법보다도,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마법같은 일이란 저런 것이 아닐지. 게르다가 그 오랜 시간 매일 새 날을 맞이하듯 거실의 두 사람을 보며 옅은 경이 속에 생각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 어디에도 맞는 기분이 들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상할 수는 없겠죠? 누굴 향한 질문인지 영 헷갈릴 그런 말 뒤에 더운 모래에 뺨을 대고 누우며 카이는 선글라스를 내밀었다. 아마도. 역시 대답이라기엔 부족한 말 뒤에 조지는 선글라스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작은 창 밖의 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무뎌지지 말라고.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는 참 꾸준했으며 물과 모래의 경계 저 멀리에 선, 게르다의 것일 인영을 내다보며 그때가 되서야 카이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