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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이깟 양심적으로 사이 간격을 좀 띄워두고-우당탕 급조한-인권-유린 상자로는 당신의 선을 제대로 지워낼 수 없어!

by Rybs 2023. 2. 21.

~인권유린상자에 들어가 버린 미미와 론디의 이야기~

추천 BGM: https://youtube.com/watch?v=F4-SxcCO5d0&si=EnSIkaIECMiOmarE


평소에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이며 이것저것 하고 싶다 주절거리는 것 치고 이런 상황에서 너 꽤 얌전하다.


그 말이 참 아이러니하게도 블론드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푹 대고 있었다.  미미씨가, 위기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닐까요? 이런 건 스킨십 축에도 안 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럴 만은 했다, 그래봐야 평범하게 끌어안고 있는 자세이기도 했고 당신 머리도 겨우 제 어깨 부근에 기대져 있고 하니까. 어쩐지 푹신하고 말랑하고 따뜻하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덩치가 늘 보는 것보다 작고, 얇게 느껴진다. 물론 힘으로 미미씨를 이길 수야 없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런 생각에 잠길 정도로 마냥 애 취급도 하루 이틀이 아니니 가끔은 거기에 길들여져서 제가 더 크다는 걸 잊어버린 게 아닐까 했다.  막상 이렇게 물리적으로 기대 보자니 들어차는 감각이 참 알맞기만 하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느끼고 생각에 잠기는 것 지나치게 즐기고 있던 탓에 상황의 심각성은 제쳐두고 조용히 있었던 것이 잠깐인데 그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한국에선 이런 상자를 뒤주라고 그러는데 원래는 뒤주란 게 쌀을 넣는 데거든. 근데 옛날에 어떤 왕이 본인 아들을 거기 넣어가지고는 이젠 사람을 넣어버리는 곳으로 다들 알고 있다고 그러더니 진짜 우리가 들어와 버렸네, 어쩌냐 론디야. 참고로 그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상황에선 알고 싶지 않을 거야. 물어보지도 마라. 옅게 불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비좁은 상자 안을 마저 알차게 채우는 정도였지만 당신이 그럴 것은 예상한 바 없고도 신기하기까지 해서. 해서 놀람과 초조함으로 블론드가 벽을 손톱으로 긁어내리기 시작하거든 덜 마른 회반죽이 밑에 가득 끼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 당신도 당황만 하지 않았다면 갓 미장한 내벽의 축축한 냄새부터 은근히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 같은 것은 진작 알아챘을 사실이다.


괜히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거든 눅눅하고 차가운 공간의 냄새 외에도 제 몸에서도 똑같이 날 평범한 바디워시 향 섞인 톡 쏘듯 매운 담배연기의 흔적이 코끝에 옅게 남는다. 분명 같은 제품에 같은 담배를 피우는데도 상대의 옷가지나 드러난 맨살 위에서 그 상을 달리하는 것이 이상하기만 해서-저어, 사실은 미미씨 가슴에 입 막혀서 그랬어요. 좁아터져서 완전 꽉 들어차는 게 이 상황이 저는 아주 만족스럽, 아! 왜 때려요!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라고요? 그보다 여기서 진심으로 더듬거리기라도 하면 미미씨가 제 머리털 다 뜯으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제 입으로 방금 더 기대고 있을 기회를 차내고는 고개를 최대한 멀리 두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한단 말이며 이것저것 하고 싶다 주절거리는 것 치고 꽤 얌전하게. 잠깐의 정적을 대신하듯 해맑은 어조로 단정적인 물음을 내어놓기로 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심각하게 갇힌 것 아니란 상황 파악마저 느려질 만치 당황하게 만든 것이 미안하고, 그 미안함 가운데에 아주 우쭐해져서 그렇다. 우쭐하다, 기쁘다, 즐겁다, 두근거린다, 뭘 골라도 다 알맞은 감정일 테지만 부디 가장 장난스럽고 그렇기에 진심에 먼 태그를 붙이도록 하자. 얼마든지 그렇다고 해도 돼요. 늘 그래왔잖아요. 아아, 이깟 양심적으로 사이 간격을 좀 띄워두고-우당탕 급조한-인권-유린 상자로는 당신의 선을 제대로 지워낼 수 없어! 그것은 종종 슬프지만 크게 괴로워할 만큼의 일은 아니다. 맞아. 하나하나 다 뽑아버릴 거야. 그나저나 숨 막히거나 어디 삔 곳은 없고? 음, 굳이 말하자면. 굳이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확실한 것만 말해라. 알겠어요. 지금 그렇게 불편하진 않은데요. 사방으로 벽이 둘러져 있는 것 빼고는 그냥 좁은 침대에 우리 둘이서만 알콩달콩 꼭 붙어서 누워있는 거랑 비슷하다는 느낌. 그렇다면 다행이고. 근데 우리 그런 적 없잖아, 정신 차려라 론디야. 야아, 역시 기억 못 하네요. 그때 얼마나 취했던 거예요? 맥주 4캔은 미미씨에게 너무 과했죠? 그런 두루뭉술한 말로 나 속이려고 들지도 말고. 조금의 불안함도 남기지 않기 위해 실없이 주워 넘기는 잡담들 속에서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언제 이렇게나 떠들었냐는 듯 어색한 정적이 끼어든다. 벽을 짚은 블론드의 한쪽 손이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와 바지 뒷주머니로 갈 무렵 영한은 온 힘을 다해 꿈틀거렸다. 어어? 어어어? 진짜 머리털 다 뽑히고 싶어? 그럴 리가요. 단지 미미씨는 언제나.


(종종 슬프지만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실감하는 건 그런 것이리라.)


이렇게 뒷주머니에 차키를 넣어두잖아요. 이게 필요해서요.  작은 짤랑 소리와 같이 키 뭉치를 꺼낸 블론드는 손안에 그것들을 꽉 쥐고 웃었다. 어떻게 들어왔든 나가야 되지 않겠어요, 물론 이렇게 붙어 있는 것 저는 정말 좋지만. 제 머리털도 소중하고, 이런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 속에서 이렇게나 붙어서 분위기가 야릇하니 어쩔 수 없나-하는 맘으로 은근슬쩍 기대서 얼랑뚱땅 평소 상상하던 온갖 파렴치한 짓들을 해내는 데엔 제 자존심이 매우 상할 예정이기도 해요.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참 한결같구나. 조금이라도 떠밀리는 상황에선 절대 안 될 말이죠. 언젠가 미미씨 입으로 정말로 저 아니면 안 되는 몸이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싶은데. 너 산소부족 상태 아닌 거 정말 맞는지 슬슬 의심이 된다? 벽에 닿은 등과 두 발에 잔뜩 힘을 주고 쭉 밀어내거든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보기에는 참 견고하네요. 부수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엔 충분하게요. 하지만 사람이 둘이잖아요. 둘 중 누구라도 계속해서 내리친다면. 한 사람만 내리치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뭐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거, 빨리 발로 벽 차라는 말이거든요, 미미씨? 나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그나저나 근데 제 다짐은 다짐이고 이렇게 된 김에 나가자마자 탈출 세리머니로 가볍게 볼뽀뽀 정도는 해봐도 돼요? 우리 방금까지 하반신도 맞닿던 사인데. 방금 한 말이랑 전혀 안 맞잖아, 론디야. 장난하냐! 한 번만요. 나가는 데에나 집중해! 


근데 론디야, 아마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포기하지 그러냐.

글쎄요, 제가 죽었다가 깨어나면 또 모르잖아요. 만약에 그러거든 뽀뽀보다 더 좋은 거 해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