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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ate

by Rybs 2023. 12. 5.

- 이렇게까지 완전 보통의 데이트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데이트를 해버리고 마는 크리스마스의 한나일.

-씨씨님(Sissi_do)커미션으로 작성하였습니다.(공백 포함 3159자)


과자 한 봉지를 뜯어 들고 한나 아직 안 들어왔어? 하고 만트라에게 물어보거든 돌아오는 대답이 한나가 안 보이는 이유가 아니라.


로버, 저녁에 꽃다발하고 들고 갈 선물로 캐시미어 스카프는 별로예요? 당일 배송에 25프로 세일도 하는데. 하는 말이었던 것도 평범한 크리스마스다운 일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급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고 있는 그가 무려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일 오전에 살 만큼 일 때문에 바빴다는 걸 여기 사람들이야 모두 알지만 그의 아직은 '전'이 아닌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아낸다면 이해해 줄지는, 글쎄. 이 대화 전체를 국가 특급 기밀로 지정하는 게 그의 결혼생활에 좋을 것이다. 그래도 힘내. 어쨌든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 이런 특별한 날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니까. 밸런타인, 핼러윈, 생일, 뭐가 되었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그간의 외로움을 조금은 갚을 수 있지. 저 서툰 선물마저도 사랑을 회복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굳이 망칠 필요가 있겠어? 만트라. 옵션에서 포장 및 메시지 카드 꼭 체크해. 그러나 뱀파이어 동료의 삐걱이는 결혼생활에 조금의 조언을 주는 일이 오늘의 미하일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빨랐다. 누구 한나 본 사람? 아까 본즈에서 왔다는 웨어울프랑 나갔어요. 한나만 만나면 된다는 거 보니 일 때문에 온 건 아닌 것 같고요. 같은 상세한 대답이 그제야 돌아올 때 미하일은 두 번째 봉지를 뜯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기사 당신도 이런 날에 혼자 보낼 일 없는 사람이지, 언젠가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은퇴한 전직 경찰은 스테디셀러라고. 이 말을 당신이 들었음 자주 구겨져 있는 미간의 골이 더 깊어졌겠지만 그런 당신이 어떤 특별한 날들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굳이 잡지 않는 것을 눈치챈 지는 좀 되었다. 당신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누군가 곁에 있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니까. 로버. 혼자 있음 죽기라도 해요? 그럼, 한나. 당신도 그런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지. 나와 달리 당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이대로도 괜찮아. 그럴 때 다른 누구 아닌 나를 찾을 줄 아는 한. 사소한 마음들까진 못 가질 것도 없다. 동료며 친구보다는 지나치게 가까움에도 몇 년째 연인은 되지 못하는 사이에 머문 채. 이쯤 해선 그가 더 간절히 찾을 필요도 없이 자리 주인이 돌아온다. 왜 내 자리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할 말 있어요? 속 뻔히 드러나는 수작을 걸어볼지 말지 결정할 순간이기도 했다. 딱히, 내가 필요한 일은 없어 보여서 일찍 나갈까 생각 중이었어. 크리스마스잖아. 당신은 드디어 새 친구가 생겼나 본데. 본즈 쪽 웨어울프한테 데이트 신청받았다며? 같이 나가서 얘기 좀 하고 들어왔을 뿐이에요. 별게 다 데이트 신청이군요. 이런 날에 그렇게 오는 건 데이트 신청일 가능성이 더 높더라, 경험상. 경험상? 그렇다니까. 오늘 같이 저녁 먹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던 건 맞아요. 경험이 또 한 번 이겼군. 거절했어? 거절했어요. 이미 약속이 있다고 하고. 그 행운의 약속 상대는 누굴까.

당신일걸요, 아마도. 축하해요. 제멋대로 가져보는 믿음을 그가 배신하는 일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드물어지고 있었다. 단지, 그럼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란 말로 반기며 냉큼 따라붙더래도 그에게서 딱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사이에 머문다는 것은 또 그런 일인 것이다. 단순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는 일. 


그리고 이렇게까지 완전히 평범하고 보통의 데이트를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하려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가 아닌 다른 날들에도 충분히 했을법한 완전히 평범하고 보통의 데이트였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특별난 목적지 없이 나란히 걷기도 했고, 날이 날인지라 넓은 광장을 꽉 채울 만큼 성대하게 장식된 트리를 구경하는 것부터 해서 양손에 짐이 가득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이에 그 어떤 이질감 없이 섞여 들었으며, 산타 모자를 쓴 누군가가 노래하는 걸 잠깐 듣고, 다른 날들과 별다를 것 없는 대화를 나누다 특별한 날에 알맞게 어딘가 근사한 곳을 갈 수도 있었음에도 둘 다 좋아하는 평범한 단골 식당에 들렀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뒤에도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이 평범한 데이트를 위해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없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그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붉은색과 녹색으로 장식된 케이크들이 가득한 진열대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케이크를 아무거나 사들거든 이 특별하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어느 한 구석 특별한 곳이 없어 완벽한 모양새로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그래서 우리, 이 스노우볼 하나씩 살까? 한나는 크리스마스 기념 세일 스티커가 붙은 스노우볼을 마뜩잖은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만약 이 싸구려 유리 돔 안에 제 삶의 어느 한순간을 케이크의 조각처럼 잘라 넣을 수 있었다면 이 순간을 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감상적인 이유로 고개를 끄덕였고-미하일이 고른 두 개의 스노우볼을 깨지지 않도록 포장재로 겹겹이 쌌다. 이르게 해가 지는 계절에 돌아가는 길은 빠르게 어두워졌으며 둘은 시내의 활기가 옮겨 붙지 않은 외곽을 지나다 빛나는 십자가를 보고는 근처에 차를 세웠다. 자정 전에 눈이 오면 당신이 이기고. 눈이 오지 않으면 내가 이기죠. 담배를 물고 뭉개지는 발음으로 한나가 말할 때 미하일은 그 십자가를 보고 있던 고개를 돌렸으며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드리운 여상한 그의 얼굴을 보거든 이렇게나 별 것 아닌 순간들 속의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크리스마스가 아닌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담배 연기가 맥없이 흩어지고 난 뒤에도 하늘은 흐린데 좀처럼 눈이 올지 안 올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알 수 없는 채 해가 완전히 진 뒤에야 둘은 차에 다시 탔다. 데이트란 건 뭔가, 적어도, 데이트는 그리고 보통, 그러니까, 데이트다운 데이트라기엔, 애초에 이것은. 색색으로 반짝이는 불빛도 매년 되풀이되는 유명한 노래들도 저 뒤에 남겨두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엔 둘 중 누가 이런 말들을 열린 차창 밖으로 버렸는지, 그러한 말이 새삼스레 따뜻한 옷 안쪽으로 갑자기 차가운 손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살에 뜨끔한 감각을 주었는지 따위는 잊어버린 셈 치기로 했으며...

 


연휴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스노우볼을 잘 보이는 곳에 둘 때, 미하일은 그것을 몇 번 흔들어 돔 안의 세상에 눈과 반짝이가 흩날리게 두었다.